우리는 흔히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는 근거 구절을 들면서 위와 같은 신념을 순전한 신앙으로 승화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이 본문의 바로 앞에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라는 조건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하나님은 일정액만 투입하면 당연히 상품이 쏟아져 나오는 자동판매기도, 인간의 욕심을 뻔히 아시면서도 일부러 속아주시는 축복 기계도 아니시다. 인간의 어떠한 욕망도 하나님의 이름만 빌려 구하면 그대로 받게 된다는 신념은 기독교 신앙이라기보다는 자동판매기 사용설명서 형식과 흡사하다

 

교인들의 상당수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러 나온다기보다는 복을 받으러 나오는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그게 그것 아닌가? 그게 뭐가 잘못인가? 누군들 복에 관심이 없나?

 

그러나 원론적으로 말한다면 예배의 자리로 나오는 자들은 이미 가장 큰 복인 구원의 선물을 얻은 자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복은 결코 신앙생활의 주제가 될 수 없다. 이미 복은 받은 거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경배하고 선한 일꾼으로 살아가려고 나오는 것이지, 결코 복 받으려고 나오는 게 아니다.

복 받으러 나오는 교인들이 많을수록 그 교회는 교회의 본래 존재 목적에서 벗어나기 쉽다. 그러나 복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처음부터 베풀어 오신 것이고, 이젠 우리의 경배와 순종의 삶이 필요한 것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건강한 신앙상식과 올바른 신학적 이해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은 가운데서 방언과 치병 등 눈에 드러나는 현상들이 일어나니 사람들의 관심은 이끌어 가시는 성령의 주권보다 눈앞의 목사에게 집중되고 말았다. 그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놀라운 현상을 체험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안수한 목사가 더 크게 보이는 것이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누가복음12장29절~31절)

 

※ 당당뉴스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