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입구에 있는 겟세마네는 하나님과 대화하기 좋은 한적한 동산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거기서 밤을 지새우며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우셨는지 “근심과 번민에 싸여” 함께 간 제자들에게 “지금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라고 호소하시며 깨어 중보기도해줄 것을 당부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땅에 엎드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하시고자만 하시면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주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38~39, 공동번역). 어찌나 간절히 기도하셨는지 같은 사건을 기록한 누가복음에는 “땀이 핏방울같이 되어서 땅에 떨어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2:43~44, 표준새번역. 공동번역에는 이 부분이 본문에는 없고 관주로 설명되어 있음).

어쩌면 이런 겟세마네의 예수님께 실망하신 교우님도 계실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좀 더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셨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마음이 드실 수 있겠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초연한 모습을 보여준 위인들이 역사에는 수없이 많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앞두고 제자들이 피신하라고 간청했지만 악법도 법이라면서 의연하게 독배를 마셨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니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라며 십자가 고난을 피하고 싶어 하시는 예수님의 연약한 모습은 우리를 충분히 당혹스럽게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연약하신 예수님이 참 좋습니다. 34년 전 어느 날, 대학 졸업반이었던 저는 목회자의 길을 가야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하며 기도했습니다. 여느 한국의 기독교인처럼 저 역시 보수적인 신앙공동체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평생 복음을 전하며 사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은 없어보였습니다. 하지만 목사로서의 삶을 제가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때 성경을 묵상하며 기도하던 중 겟세마네의 예수님을 새롭게 만났습니다. 너무나 친숙한 말씀이었지만 그때는 전율을 느낄 만큼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절망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시는 한없이 의기소침해지신 예수님, 그 예수님이 저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용기를 주셨는지요...

그렇게 겟세마네의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고 나서, 저는 비로소 목회자의 길을 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연약하실 때가 있었구나. 그렇다면 내가 약해지거나 지치고 쓰러져도, 절망감에 사로잡혀 투정을 부려도 크게 야단치시지는 않겠구나. 오히려 더 잘 이해하시고 도와주시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때 저에게 목회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신 분은 물 위를 걷는 기적의 예수님이 아니라, 수천 명을 먹이고 병든 자를 일으켜 세우시는 위대한 예수님이 아니라, 심히 고민하며 기도하시는 겟세마네의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서 멈추지는 않으셨습니다. 날이 밝으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야 할 처절한 상황이었지만, 피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지만, 심히 고통스럽고 겁도 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의탁하시는 주님의 기도는, 진정 믿음의 기도가 무엇이며,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 마음 깊이 새겨주었습니다.

교우님들도 살다보면 힘드실 때가 있겠습니다. 그 때 우리 예수님처럼 그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께 투정도 부려보십시오. 제가 만난 하나님은, 유창한 기도보다, 담대한 믿음의 기도보다, 비장한 헌신의 기도보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드리는 기도를 좋아하는 분이십니다.

 
(류상태의 주일편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