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전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일관되게 우리에게 나타내시려 하는 부분 중의 하나가 “ 공의” 즉 하나님의 의입니다. 성경을 펼쳐보면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나오는 것이 바로 “ 공의”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펼쳐지시기를 원하시지, 사회와 교회에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여도 감추고 덮어두시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특히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교회의 부패와 부정을 쉬쉬하며 덮고 만다면, 이것은 누룩과 같이 더욱더 퍼질 뿐, 교회는 결코 사회의 등대 역할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사회와 교회에 일어나고 있는 각종 불의한 현상들에 대하여, 분란을 일으키는 것보다는 은혜로운 것이 좋지 하며 침묵하는 것을 원 하실까요 ?

그래서 사회와 교회에 부정과 부패가 독버섯같이 퍼져나가도 하나님이 심판하시는데 내가 나서봐야 무슨 효력이 있을 것인가하며 방관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까 ?

공의의 하나님이라면 성도들이 이러한 비겁한 자세를 취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런 식으로 부정과 부패- 은폐- 부정과 부패- 은폐....라는 악한 연쇄 고리를 오늘날까지 이어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감히 주장합니다.

 

종교 개혁은 당시 부패한 로마 카톨릭의 불의와 부패에 대한 비판과 저항 속에서 일어났습니다.

만약 이러한 개혁적인 비판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개혁 교회는 없었을 것입니다. 

끊임없이 개혁되기를 하나님께서 바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개혁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건전한 비판은 필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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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우리에게 바른 판단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이 바른 것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어떤 목회자들은 비판을 하는 것은 월권이며 성경이 철저하게 금하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치입니다.

비판하지 말라는 것은 어떤 사람의 흠을 잡아 넘어뜨리기 위하여

악의적이며 위선적으로 하는 비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지 말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악한 마음을 가지고 하는 악한 비판입니다. 성경이 비판하지 말라는 부분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며 정당한 비판을 하지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또 권징에 대하여 아주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5-17에 “너와 그 사람만 상대하여 권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날마다 증참케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하였습니다. 이 말씀도 바르게 판단을 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하나님의 의가 실현되게 하기 위하여, 성도들이 판단하고 분별하고 시험하기를 원하십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그당시 부패한 지도자들에 대하여 “ 회개하라 ”고 외쳤듯이 오늘날도 많은 의의 목소리들이 공의롭지 못한 것들을 물리치기 위하여 부르짖기를 원하십니다.